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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정, 쟁점법안 ‘중도 강화론’ 실천할 때

사회 혼란과 갈등의 현실 인정하고, 야당 상대로 한 ‘대담한 상생’ 필요

  • 입력 : 2009.07.08 04:00:22
  • 최종수정 : 2010.06.16 16:41:23
◆논객 5인이 MB에게 전하는 쓴소리◆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을 기치로 승리했다. 이념 과잉을 접고 중도·실용정치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이 증폭되면서 정치 불안정은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 미디어법을 둘러싼 입법 전쟁 등을 계기로 정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왜 중도를 표방한 정부에서 정치 불안정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진보에 대해 갖고 있는 배타적 감정이 정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지난 5월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질서는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질서가 더 중요하다’는 보수의 입장을 지지하는 비율이 72.9%인 반면,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진보의 입장을 지지한 비율은 21.2%였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은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또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평등이 더 중요하다’는 진보 입장에 동조하는 비율이 63.1%인 반면,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보수 입장은 26.7%에 불과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만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보수의 생각이 착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정부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과, 사회가 지향하려는 가치 간에 충돌이 생기면 정치 갈등이 증폭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경제 살리기’ 목표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 KSDC 조사 결과, 향후 10년간 우리나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목표로 ‘높은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일(49%)’이 가장 높게 나왔다. 하지만 ‘개발에 의한 경제적 이익보다 환경보전이 우선’이라는 견해에 국민의 73.6%가 동조했다.

향후 정치 안정을 위해 정부 여당은 무엇보다 먼저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불완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보다 완벽한 통합(A more perfect union)’을 위해 함께 매진함을 기본으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대화하고 타협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성장·효율·자율·경쟁·체제수호를, 진보는 분배·균등·투명·책임·민족 공존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진보의 가치는 잘못됐고 보수의 가치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진보의 가치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지혜를 도출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잘한 것이 있으면 현 정부에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는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권력 분산 시대에서는 여당이 정부에 대해 당당하고 꼿꼿하게 할 말을 할 때만이 당이 활력을 찾고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동시에 건강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의 사회 혼란과 갈등의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야당을 상대로 ‘관용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대담한 상생’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정치 안정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은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디어법의 대승적 해결에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사회 통합을 위한 새로운 방향으로 ‘중도 강화론’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 간에 다름보다는 같음이 더 많음을 그 핵심 전제로 하는 것 같다.

미디어법을 포함한 핵심 쟁점 법안들에 대해 중도 강화론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천으로 살아 숨 쉴 때만이 비로소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 안정의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13호(09.07.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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