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정치적 정통성을 묻는다

김재홍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18대 대통령선거는 여러 변수에 의해 좌우됐지만 특히 연로세대와 영세서민층에서 종전 선거와 판이한 투표선택이 이루어졌다. 60대 이상 투표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71.4%를 얻은 것으로 나타나 21.4%를 득표한 민주당 문재인 후보보다 무려 세배 이상 앞섰다. 세대별 투표경향에서 연로층이 보수정당 후보를 찍는 것은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지나치게 컸다. 총득표율 차이 2.6%에 비추어보아도 60대 이상 투표에서 엄청난 편차가 만들어졌다.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2002년 대선 결과를 보면 같은 60대 이상에서 노무현 후보가 47.6%로 44.6%를 얻은 이회창 후보보다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이 득표율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각각의 대선 직후 1200~1500명의 표본을 면접조사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신뢰받는 조사 결과다.

[시론]박근혜 정부, 정치적 정통성을 묻는다

박근혜 후보는 선거 당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매달 20만원씩 드리겠다고 공약했다. 소득이나 다른 연금에 연계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단언이었다. 이것이 60대 이상의 투표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첫해에 12만원, 둘째 해에 14만원, 다음 해에 16만원, 임기말에 20만원, 이렇게 단계적으로 올리겠다고 설명했다. 대선 후 어느 토론회에서든 단번에 20만원씩 올려주겠다고 한 박 후보의 공약이 유권자를 더 사로잡았으리라는 평가가 공통적이었다. 선거전략에서 앞섰으며, 어려운 복지정책을 대중의 언어로 쉽게 잘 전달했다는 얘기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하고 있다. 누가 먼저 선정적인 공약을 내놓느냐는 ‘유권자 마케팅’ 전략이었을 뿐이며 그 실천가능성에 대해 따져보지 않은 유권자에게도 잘못이 없다 하기 어렵다. 그러나 민심은 표를 얻는 데 결정적으로 써먹은 이른바 ‘메가공약’을 파기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까?

대선의 이변은 특히 소득계층별 투표분석에서 불거졌다. 월소득 249만원 이하 투표에서 박 후보가 52.4%를 얻어 37.3%를 얻은 문 후보보다 15% 이상 앞섰다. 보통 저소득층이 보수진영의 여당 후보보다는 야당 후보를 더 지지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버린 것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와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모두 저소득층 투표에서 10~15% 더 얻은 것에 비교해 보면 큰 변화였다. 이를 두고 학계와 언론에 ‘계층 배반 투표’라는 말들이 나돌기도 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인 이들 영세서민층 투표도 사회안전망에 해당하는 기초연금 공약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종전의 투표경향에 비해 세 번째로 크게 바뀐 것은 자영업자 집단이다. 자영업자는 범중산층 이하에서 월급쟁이와 달리 대부분 소규모의 독립적 수공업이나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이다. 이들의 투표에서 1997년 김대중 후보는 46.9%로 24.7%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크게 압도했고 노무현 후보도 47.0%로 이회창 후보의 37.7%보다 앞섰다. 그러나 이번에 문재인 후보는 37.5%를 얻어 56.0%의 박근혜 후보보다 크게 뒤졌다. 경제불안 계층인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건드린 요인 역시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정책의 총론격인 경제민주화도 대기업 친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달 16일 박 대통령은 3자회담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내가 국정원 댓글 덕분에 당선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 대표도 대답했듯이 그것은 계량화할 수 없는 변수였다. 그러나 국가정보기관 요원이 대선 민심을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은 일반 공무원이 개입한 관권선거를 넘어선 ‘선거공작’이었다. 대선의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을 최종적으로 가려줄 검찰 수사와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런 와중에 채동욱 검찰총장을 마녀사냥식으로 찍어냈으니 어떤 검사가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데 나서겠는가.

국정원 댓글이라는 대선과정 훼손과 함께 이른바 득표전략상 메가공약이라는 기초연금과 경제민주화의 파기까지 보태진 상황에서 과연 박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은 문제가 없을까? 서민들의 ‘계층 배반 투표’까지 배반하면서 과연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을지, 자영업자들의 허탈감은 언제 분노로 바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정통성이란 법적이기보다도 민심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지에 관한 다분히 정치심리학적인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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